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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태국에 간지 1년 9개월 만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말씀의 원리대로
주변에 교회가 없는 곳, 그리고 교회가 꼭 필요한 곳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여러 곳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본국 후원자, 후원교회에 이 뜻을 알리고 기도요청을
하였을 뿐 아니라 태국 선교사들에게도 이 기도 제목을
알리고 기도 요청과 적당한 장소를 위해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 당시 TES 신학교에 재학중인
캄 전도사(지금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교회
개척사역을 하고 있다)와 함께 지금의 교회가 있는
방콕 변두리의 사하껀 동네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약 2천 세대가 있는 평범한 주택가인데 동네에 절도
없고 무슬림 사원도 없을 뿐 아니라 한번도 교회가
세워진 적이 없는 동네였다. 주변에 초중학교도 있고
유치원도 있고 그리고 더 매력적인 것은 교회로서 아주
알맞은 공간이 확보된 주택이 별로 비싸지 않은 월세로
나와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교회 간판을 걸었으나
신학생인 캄전도사와 그의 딸, 그리고 우리 가족이
교회 개척 멤버였다. 첫 주에 누가 올까 염려가 되었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 그것도 교회가 무언지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간판만 있다고 제발로 찾아 올리는
없고 하여 전도지를 돌리기도 하고 그간 아는 이웃들에게
교회를 알리기도 하였다. 다행히 캄 전도사가 붙임성이
좋고 전도의 은사가 있어 첫 주부터 사람이 붙기 시작하였다.
물론 첫 주엔 캄 전도사 딸, 그리고 동네 학생 두 명,
청년 한명과 우리 가족 등 단촐 하였으나 첫 예배 치고는
섭섭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여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한달만에 태국
방학인 4월이 되면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Summer
School’ 이란 타이틀로 컴퓨터, 피아노, 영어 등을
가르치면서 교회를 소개하게 되었다. 전단을 만들어
학교 앞과 교회 주변에 뿌린 결과 약 50 여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두 주간 교회에 발을 디디면서 지역사회에
교회를 알리게 되었다. ’모든 종교는 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고 믿는 태국인들에게 교회가 크게
주목의 대상이 아니면서도 경계의 대상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오니 어른들도 아이들을 데려 오면서
우리와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어른들도 한두 사람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 가운데 이웃집 ‘수니’ 아주머니는
원래 북쪽 람빵이 고향인데 어려서부터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여 기독교를 일찍 접하긴 하였으나
불교도로 지내오다가 바로 이웃에 교회가 있기에 교회에
발을 내딛고 두통으로 늘 시달려 오던 차에 교회에
가면 나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간간이 나오다가
지금은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 지금은 다른 교인들과
함께 제자 훈련을 받고 있다.
그로부터 몇 개월후 한국에서 온
태권도 선교사 정재형 형제가 와서(원래 이 형제는
약 3개월 정도만 봉사하고 가려 하였다) 2년 동안 교회에서
숙식하면서 어린이 청소년들을 훈련시켜 전도의 좋은
묘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시 15세 소녀인 ‘넨’(지금은
21세)이란 몸집이 큰 소녀가 교회에 발을 내딛었다.
무슬림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엄마마저 자기와
어린 여동생 하나 놔두고 시골로 가버리고 자기는 아버지의
첩 집에 버려지면서 의지 할 곳 없는 어린 소녀였는데
태권도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더니 재미를 붙여
배운 실력이 지금은 유단자가 되어 정선교사가 떠난
자리를 매꾸며 훌륭한 사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아내 백선교사가 꾸준히
피아노를 가르친 결과 지금은 주일 예배 반주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일군이 되었다.
불기 2547년. 일반 태국인들은
금년이 서기 2004년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불기만
알고 있다. 석가모니가 성불하면서 시작되었다는 불기
역사가 서기 보다 훨씬 오래 되었으니 불교가 기독교의
형님 쯤되고 모든 것이 불교로 시작하여 불교로 끝나는
태국에서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왕따’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눈에 보이는 핍박은
없으나 자식이 불교에서 기독교인이 되면 ‘누가 나를
위해 장례식을 해 줄 것인가’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으로부터의
핍박과 이웃으로부터의 냉대는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화의 물결에 힘입어
특히 젊은이들의 의식이 불교 태국에서 변하고 있다.
전통적 불교의 가치관에서 변화의 물결에 힘입어 복음이
곳곳에서 영향을 발휘하고 있고 태국 교회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금 태국 교회는 ‘2010년 프로젝트’를
세워 2010년까지 태국 전 군에 한개 이상의 교회를
세우고, 면마다 한개 이상의 기독인 모임이 형성되며,
모든 동리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76개 도 가운데 아직 교회가 하나도 없는 도가 있을
만큼 교회가 많이 필요한 곳이 태국의 현실이다. 태국
전역에 절은 약 3만개 교회는 고작 2,000여개에 불과하며
그나마 한 교회의 교인 숫자도 평균 30여명인 현실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다.
태국도 한국처럼 신학생들이 재수
삼수 해가면서 주의 종이 되겠다고 나설 날을 꿈꾸어
본다. 가뜩이나 적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수준 있는
목회자 후보생이 흔하지 않고 그나마 몇 안되는 양질의
크리스챤들도 힘들고 사회가 알아주지 않은 목회자의
길을 선뜻 가려 하지 않는다. 고난을 모르고 자란 태국의
기독교인들이 애써 힘든 일을 하여 하지 않는다. 결국
교회개척의 성패는 현지인들이 책임져야 하는데 여기에
선교사의 고민이 있다. 그들의 혼과 마음에 복음의
열정을 불어 넣어 ‘선교사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태국
전역에 교회를 세우자’는 운동이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구체화되길 기도하고 있다. (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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