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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차 한인세계선교대회>셋째날>저녁선교대회>선교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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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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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러시아선교사
1994년 예장통합 러시아선교사로
파송되어 현재까지 사역해 오고 있는 이희재 선교사는 구 레닌그라드, 현재 쌍트페테스부르그에서 성령의
살아있는 선교공동체, 미르신학교, 미르선교회, 미르교려인교회, 여러 현지인 교회 및 금요기도성회 등
여러 선교사들과 함께 더불어 연합사역 중이다. 장신대 신대원, 싱가폴타문화권 선교훈련원 수료, 시카고
멕코믹신학대학원(MATS)에서 공부하였다. 구소련 한인선교사협의회 회장도 역임하였다.(www.mirmissi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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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선교 배경
금년은 한.러수교 120주년, 한인이주 1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 면적으로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 되지요. 동에서 서까지의 거리는 11,000Km로 10시간 시차, 대륙횡단 열차로는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유목민기질이 있어서 땅이 더러워 져도 또 다른 넓은 땅으로 이동 한다고 합니다. 다민족
국가로 21개 공화국, 49주 등 연방주체는 89개, 얼마나 복잡한지요. 러시아 정교회는 55% 기독교는 1%로
추정 되고 있습니다. 인구는 대략 1억 4천 5백만명, 수도는 모스크바 (870만명), 제가 섬기는 곳은 쌍트
페테스부르그, 약 480만명, 구 레닌 그라드로 알려진 제정 러시아시절 수도 였으며, 공산정권이 탄생한 곳입니다.
1917년 볼쎼비키 혁명이후 약 1000년에 걸친 러시아의 정치, 문화적 연속성이 단절되었습니다. 1991년 12월
구소련이 붕괴되고 독립국가 연합 (C I S)이라는 새로운 정치 경제 불록이 형성 되었습니다.(실로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복음의 문이 열린것입니다.)
2. 선교사의 Identity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약하고 부족한 저희 가족을 대략 9년 8개월전에 러시아 쌍트 폐트스부르그로 파송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 마흔살무렵 추위와 황당한 러시아어, 마피아의 두려움, 러시아 여성, 스켄달의 가능성 등 도무지 적당치
못한 선교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initiative, 강권적인 섭리에 일단 순종 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소위 74학번 운동권 핵심 주자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유신헌법 철폐에 주동으로 강원도 원통 유격대 조교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대학제명됨) 10.26사태 이후 극적으로 대학에 복학 되었습니다. 그무렵, 반공포로 출신이었던 아버님이
갑작스러이 소천케 되었습니다. 그때 주의 빛이 저에게 비추었고 사도 행전 적인 회심을 경험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성령께서는 장신대 신대원, 고척교회 부목사 , 싱가폴의 A.C.T.I. 시카고 멕코믹신학대학원 그리고 아주 넓은
러시아 광야로 인도 하셨습니다.
3. 영적 각성 운동 ( 북방 민족들에게
주의 평강과 새 하늘의 소망을! )
24년전 영락 청년 시절 믿음의 형제들과, 민족 화해와 세계선교의 꿈을 가지고 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들은 세계여러
나라로 흩어져 주의 손안에서 연단 받으며 세움을 입고 있습니다(새 하늘 선교회). 또한 러시아에서도 두 가정이
모여 기도하던중 당시 연합 신학교 야간을 운영하던 몇몇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996년
6월 “북방민족들에게 주의 평강과 새 하늘의 소망”이라는 모토로 Mir 선교회를 태동케 되었습니다. 그때 신학교도
주간으로 변경되었고( 금년 5월말, 8회에 걸쳐 60명이 졸업) “이땅을 치유 하소서…” 중보 기도 모임이 매주
금요일 모였지요, 2000년을 앞두고는 러시아 사역자들 중심의 연합기도 성회가 며칠동안 열렸고, 한인 선교사회
주관으로도 매월 기도 성회가 이어 졌습니다. 2001년 6월 에는 저희 지역에서 C.I.S. 구 소련 한인 선교사
대회가 열려 300여선교사 및 선교 동역자들의 동참속에 거룩한 부흥과 새창조의 소망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하바롭스크, 작년에는 모스크바, 금년 6월에는 사할린에서 열렸지요. 사할린은 한민족의 서러움이 담긴, 러시아 선교의
못자리요 역사적인 선교현장 입니다. KAL기 추락 및 수많은 눈물과 아픔이 담긴 선교지 입니다. 그 열악한 지역에서
목숨을 걸며 복음 전하며 교회당을 세우며 자립해가고 있는 주의 종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한편 사할린은 의외로
보물섬으로 연어와 꽃게는 물론 원유,석탄, 나무 등 자원이 풍부하답니다. 흑암중의 보화룰 연상케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전인적인 영성은 세계선교의 큰 밑거름이 될것입니다.
4. 사자굴에 들어간 Mir 선교 쎈터
저희 지역 선교사님들은 대략 24가정인데요, 연령층이 다양 합니다. 원로와 노장들이 많은 편이지요, 사역은 대체로
교회 개척, 신학교 사역, 크리스챤 스쿨, 청소년 및 장애자, 학원및 병원 사역등 다른 러시아 지역과 비슷합니다.
특히 가나안 신학교는 국내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요. 자체 건물이 있는 교회는 드물지만 가나안 신학교는 교회 건축중입니다.
저희 Mir선교회는 살아있는 선교 공동체, 성령이 일하시는 토양이 되도록 초교파로 여러 선교사들이 협력선교 하고
있습니다.(Mir신학교, Mir고려인 교회, Mir한인교회, Mir현지인 교회 등)여기 저기 장소를 빌리며 쫓겨다니던
중, 금년 3월 적지만 알찬 Mir선교 쎈터 장소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직도 은행에 잔금을 넣어 놓고
있지만 건물을 인수 받지 못한 현실입니다. 다소간 마피아식 주인과 법적 분쟁 중입니다. 아니, 영적 전투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발붙일 만큼의 땅도 주지 아니 하였는데 거기에 비하면 과분 하며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 갔는데 현대 요즘은 사자굴이 법적분쟁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러시아의 영성을 깨울 귀한
주의 집으로 사용 되기를 기원 합니다.
5. 예수 생명, 예수 사랑
선교는 예수 생명, 예수 사랑을 말씀과 성령으로 전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고르바쵸프, 옐친의 뒤를 이어 블라디미르
뿌친이 활약중인 러시아… 지난달 푸쉬킨이 쓴 시가 담긴 친필원고 “그루지아 언덕에서”를 (시가 3억 5천만원 상당)
뿌친이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연해주는 러시아 농업 대국으로 변모 중에 있고 한국인, 고려인, 중국인이 몰려드는
현상입니다. 최근에는 남북한 종단 철도, 시베리아 종단 철도, 나호드카 공단 건설, 사할린 천연가스 남북한 공급가스
구상, 남북한 정상 회담, 러시아 주선 소문 등 살아 움직이는 땅이 되고 있습니다. 마음에 용서의 강이 흐르고
있는 이들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할수 없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 입니다. 함께사역하는 Mir선교회
선교사님들, 러시아 사역자들, 러시아의 수많은 종들, 또 이들을 사랑으로 돕고 후원하는 수 없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에게
주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주님이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주여 기름부으시고 영광
받으소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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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섭/우즈베키스탄선교사
우즈베키스탄에서 11년째 선교의 씨를 뿌려온 신윤섭 선교사는 서울총회신학교를 나왔으며 교회개척, 신학교,
현지인 훈련등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GMS소속 선교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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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의 장벽이 아무리 두터워도 사망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내일교회를 사랑하셔서 세계를 향한 발바닥 사건이 계속 확장되게 하시고 새로운 비전을 주심에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배신하고 도망치고 실의에 빠졌던 제자들을 찾아주시고 용기를 주신 부활의 주님이 지치고 메마른고 실망될때도 있었지만
못단 종을 붙들어 주셨읍니다. 저를 변화 시켰듯이 이곳 선교지의 얼어 붙은 심령들 속에 성려의 역사로 새로운 변확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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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기/루마니아선교사
정홍기 선교사는 1986년 3월 AFC(Ambassadors For Christ)선교회 창립총무로 사역한
후 1992년 유럽 선교사로 파송되어 스위스에서 1년반 사역 후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로 이동하여
현재까지 교회개척, 현지인 지도자양성, 개혁주의 신앙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라보도대학교)을
졸업하고 영국 첼튼햄대학 개방신학교 수료 후 옥스퍼드 선교대학원에서 MA학위를 취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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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요점] - 교회개척 사역
1. 교회 개척과 현지인 지도자 양성
2. 개혁주의 신앙 운동
[사역보고]
시온교회: 1993년 노방 전도를 한 후 가정에서 시작한 성경 공부가 교회로 개척되어 현재 장년 60여명과 초,
중.고등 청년부 100여명 출석 중 이며 루마니아 정부에 등록된 루마니아 최초의 장로교회임
평화교회: 시온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개척한 교회로서 현재 60여명의 아이들과 10여명의 장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장차 교육 사역을 위한 건물을 구입하여 수리 중 에 있음
승리교회: 역시 시온교회 성도들과 함께 개척한 교회로서 어린이 50여명과 장년 10여 명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며,
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공원에서 열린 예배 중심의 사역을 하고 있음
개혁주의 신앙운동: 년 2차례 정도의 세미나를 통해 루마니아의 학생들과 정치, 경제 분야의 지식 층 들에게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개혁주의 신앙 사상을 전달하는 사역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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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모/알바니아선교사
1985년 독일로 파송되었다가
현재 알바니아로 옮겨 사역하고 있는 이향모 선교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라취시에 교회를 개척하였고 1994년 교육부 장관 인준하에 라취시 고등학교에 컴퓨터 교육을
공교육으로 실시하며 영어교육을 통한 선교사역도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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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사역내용]
1. 교회개척
수도에서 북쪽으로 55KM 떨어진 라취시에서 교회를 개척했음
주일예배(성인 10:00, 어린이 11:30)
성경공부(금, 11:00)
아침기도회(07:00)
2. 대학생 선교
수도 대학생 중심으로 소그룹 성경공부
이를 기반으로 장차 교회개척을 염두에 두고 있음
3. 문화교육선교
회교적 영향이 있는 알바니아 땅에 복음전파의 창의적 접근 방법으로 컴퓨터 교육과 영어교육을 실시함
컴퓨터 교육: 1994년 교육부 장관 인준하에 라취시의 고등학교에 컴퓨터 교육을 공교육으로 실시함
1997년 알바니아 사태이후로 현재는 라취선교교회에서 실시하고 있음.
이 교육을 통해서 수많은 공무원, 시민, 학생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으며, 라취시의 관공서, 은행, 우테국 등에서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우리 교육과정을 거친 분들이다.
영어교육 : 문화시설이 전무하고 학교교육의 열악한 상황에 처한 청소년 및 어린이 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며
선교전략의 일환으로 삼고 있다.
4. 제자 훈련: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서 성숙한 신앙훈련과
지도자 양성목적을 두고 있음
[알바니아]
1. 일반
가. 국명: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
나. 면적: 28,748Km
다. 위치: 북위 42도 39분-39도38분, 동경 19도16분-21도4분 , 발칸반도 서북부(그리스, 마케도니아,
유고, 몬테네그로와 접경)
라. 기후: 지중해성 기후(여름 건조, 겨울 온난)
마. 지형: 국토의 76.6%가 산지 또는 구릉지(평균 고도 708M)
바. 인구: 350만명(2000.7) 코소보내 200만, 그리스 내 30만, 이태리 내 15만, 마케도니아내
80만, 몬테네그로내 10만 거주
사. 민족구성: 알바니아계 95%, 그리스계3%, 기타 2% 일반적으로 알바니아인들의 조상은 일리리족이며 B.C.
1500년경에 중앙 유럽으로 부터 이주해 온 조오족으로 알려져 있다.
아. 수도: 티라나(Tirana)
자. 공용어: 알바니아어(인도유럽어 계통)
차. 주요도시: 두러스(항구도시), 블로러, 엘바산, 쉬코드라, 라취 등이 있다.
카. 종교: 이슬람교(수니파) 70% 주로 중부, 정교회 20%(주로 남부), 카톨릭 10%(주로 북부)
개신교는 1992년 민주 정권이 수립되어 개방 된 이후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극소수의 교인들과 교회들이
있다.
2. 정치
가. 정부형태: 의원내각제
대통령: 알프레드 모이시우(ALFRED MOISIU, 2002,7.24.취임,임기5년,의회간선)
총리: 파토스 나노 (FATOS NANO 2002,7,24취임, 사회당 , 연립내각) ,
외교장관: 일리르 메타(ILIR META)
나. 의회: 단원제(의석수 140명, 115명 직선, 40명 비례대표, 임기 4년)
다. 정당: 사회당 101석,민주당 27석, 인권당 4석, 민주연합 2석,알바니아 권리연합3석, 알바니아 공화당2석,
합법운동당2석, 기독민주당1석, 사회민주연합1석, 국가 통일당1석, 무소속3석
라. 사법부: 최고법원, 지방법원, 인민법원으로 구성
마. 국경일: 공화국 선포일(1.11): 1946년 인민공화국 수립일
독립선언일: 11.28. 1912년 이스마엘 케말이 이끄는 국민의회가 독립선언
바. 헌법: 1991년 구사회주의 헌법폐지, 잠정헌법 채택, 1998,11 신헌법 채택
3. 경제
가. GDP(1998년): 830불, 유럽대륙에서 몰도바 다음의 최빈국
나. 무역(2000년): 13.2억불 수출 : 3억불, 수입: 10.2억불
다. 화폐단위: ㅤㄹㅔㅋ(2004년7월 현재 미화 1불당 103 LEK)
라. 주요자원: 크롬, 니켈, 구리, 철광, 원유, 천연가스, 목재등
알바니아 경제는 시장 경제 전환과정에서의 충격과 91및 95년 2차에 걸친 폭동에
따른 산업시설 손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교통, 통신, 발전 등 사회 기반 시설이 열악하여 경제 발전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경제로의 개혁 초창기인 93-96년간 연평균 10%에 이르는 고도성장으로 발칸국가의 성장모델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고도성장은 해외 교민의 송금, 밀수 등 불법거래, 피라미드 금융에 의한 과도한
이자 소득에 기인한 것으로 실제적인 성장기반이 마련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외형적인 거품성장은
97년들어 마이너스로 반전되었다가 최근 회복하고 있다.
알바니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 진흥센타”및 “토자보증기구”를 설립하고 투자유치에노력하고 있으며 투자 이익의
자유태환, 자유로운 과실송금 및 폭넓은 시장개방 등 조치를 취하고있다.
알바니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주로 직접투자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주로 이태리 , 그리스 등 인근 국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알바니아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하여 석유, 광업, 통신등 분야의 250여개 국영회사 민영화를 계획하고 있으며,
또한 실시하고 있다.
4.역사
알바니아는 BC 1500년경에 중앙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온 종족이 정착함으로써 비롯되었으며, 아폴로니아(Apollonia),
두러스(Durres), 부트린트(Butrint)등이 이들이 정착한 가장 오래된 도시들이다.
BC 168년경에 일리리쿰 지방은 로마에 합병되었고, 알바니아는 AD 4세기 이전의 500년 동안 로마 제국의
일부였으며,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사도 바울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으며, 디도가
두러스에서 순교하였다. AD 395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되어 북부는 카톨릭교회, 남부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4~15세기 투르크족의 침략이 있기 이전에는 고트?불가리아?세르비아 등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다.
1479년 투르크령이 됨에 따라 그리스도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해야 했다.
그 후 이스마엘 케말을 지도자로 하는 독립운동으로 1912년 11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같은 해 12월 런던회의에서
발칸전쟁의 전승국들은 알바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통치자로 독일의 황자(皇子)인 빌헬름 비드를 선정하였으나 1913년
에 코소보 지역을 세르비아에게 잃게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재차 주변국의 주장이 거부됨으로써 임시정부 수립이 가능하였다. 1920년에
알바니아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국제연맹에 가입한 후에는 정파간 분열로 혼란이 계속되었으나 1925년 아메트
조그가 정권을 장악하고 1928년에는 조그 1세가 왕위에 올라 39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아시아적 통치술과
서구적 개혁을 결합하여 근대화를 시도하였으며, 이를 위한 국제적인 지원을 이탈리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의 정치적?군사적 종속관계는 심화되어 결국 39년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병합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때 독일군이 점령한 바 있었으나 1944년 11월 철수하자 엔버 호자를 지도자로
하는 민족해방전선이 정권을 장악하고 공산국가(인민 사회주의 공화국)를 수립하였다. 호자는 1985년 사망 시까지
40년 동안 통치하면서 알바니아노동당을 중심으로 엄격한 스탈린주의 노선을 견지하였다. 1945~48년은 유고슬라비아,
48~61년은 구(舊)소련, 61~72년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등 대외관계의 변화가 있었으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폐쇄정치를 표방하여 왔다. 1945년 1월에 국유화령을 발표하여 모든 재산을 몰수하였으며, 1946년에
서구, 1948년에 유고, 1961년에 소련, 1976년에는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였다. 1969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하였으며 코메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1985년 호자의 후계자로 라미즈 알리아가 정권을 장악하자 고립정책을 탈피하고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대외개방정책으로
전환하여 그리스?이탈리아?터키와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적 침체와 낙후성을 탈피하기 위한 체제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정치구조의 보수성이 여전히 존속함으로써 한계가 있었다. 사회적 통제를 완화하고 문화부문의 창조적
사고의 제고를 강조하였으나 알바니아노동당의 당규와 마찰을 빚어 근본적인 개혁은 불가능하였다.
1989년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 물결은 알바니아가 체제개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 "도미노
효과"에 의해서 공산주의가 막을 내렸으며, 다당제가 허용되고 1992년 인민회의에서 살리 베리샤(Sali
Berisha)를 국가수반으로 하는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과도기적 체제를 청산하였다. 마르크스적 헌법체계를
파기하고 신 헌법의 초안이 마련되고 있으며, 국가명도 알바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5. 문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생활?문화 수준이 낙후되어 있다. 또한 산악이 많기 때문에 민족의식의 발달이 늦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도게르만 어족에 속하는 알바니아어는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은 북부지방의 게그어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은 남부지방의
토스크어로 나뉘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남부지방에 공산당의 중심세력이 성립함에 따라 1950년부터 토스크어가
공용어로 되었다. 예전에는 일리리아어 혹은 트라키아어의 후예라는 설이 유력했다.
알바니아 이외에 그리스 및 유고슬라비아 남부 등지에서도 쓰인다. 오랫동안 다른 민족이 차례로 이 지역을 지배했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로망스어를 중심으로 터키어?그리스어?슬라브제어에서 흘러 들어온 어휘로 가득 차있다.
성서의 번역을 비롯하여 15세기 이후의 문헌이 있으며, 언어구조 그 자체는 주변의 제언어와 함께 소위 발칸언어학에
유력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전쟁 전에는 국민의 80%가 문맹이었으나 현재는 7~15세의 8년제 의무교육으로 비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티라나대학은 최초의 대학으로 1957년 설립되었다.
가. 손님접대(Mikpritje)
o 손님 접대: 손님을 천사처럼 생각하며, 언제, 누구나 방문자에 대해서는 환영, 명절 때는 대문을 닫지 않음,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나그네로 생각해서 잘 대접하려고 노력한다. 전도에 도움이 됨.
o 손님 접대 방법:
- 집에 들어갈 때는 대부분 신발을 벗는 것이 좋으나 신어도 무방함.
- 밖에서 인사를 했어도 안에서 다시 한번 더 정식으로 한다. 주인이 "미르세 에르덧" 이라고
하면 손님은 "미르세유 젯텀" 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전 가족의 안부를 일일이 묻는다.
(예, 시 칼로베? 시 예니? 등) - 앉으면 사탕이나 과자, 로쿰 등을 준다. 단 한개씩만 집어야 한다.
- 락키(포도로 담근 도수높은 알콜 일종)나 쥬스, 대화 중에 커피가 나오면 커피를 다 마신훈 가도 좋다는
뜻임.
- 과일은 그냥 씻어서 바구니에 담아두고 각자 칼을 주므로 각자가 잘라서 먹어야 한다.
- 락키는 포도로 만든 술이므로 신앙의이유로 거절해도 된다.
- 음료수를 마실 때는 "Gezuar"(그쥬알-)이라고 하며, 잔이 비워지면 금방 다시 채우므로
천천히 마셔야 한다.
- 항상 무엇을 받을 때 마다 "팔레민데릿(Faleminderit)이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
*** 순서: 사탕, 과일, 음료수, 수프, 요리, 후식, 커피 (순서 계산을 잘 해야 함)
o 대화시 유의사항: 호기심이 많으므로 우리들의 집세나, 월급, 자동차 값, 한국의 평균 월급 등에 대해서
묻는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대답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알바니아와 서구, 한국을
비교하는 대화와 정치에 대한 대화는 피하는 것이 좋다.
o 선물: 정식으로 초대받은 경우는 약간의 선물(꽃, 케이크, 음료수, 커피)을 준비해 간다. 그리고 현지인
집에서 접시에 음식 등을 주면 빈 접시로 돌려주지 말고 약간의 과일 등을 담아서 준다.
** 당신이 좋아하는 현지 음식은? 로쿰, 바클라바, 카다이프, 셰첼파레, 레첼, 카페, 코스, 달르, 콜포스토,
뷰렉, 토르트, 페툴라, 파스타, 쵸프테, 비프텍, 쉬쉬체밥, 풀라 메 필라프...
나.약속(Besa):
이들은 약속을 할 때 "아들의 머리로"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약속을 어기는 것보다
내 아들의 목을 잘르는 것이 쉽다"라는 베사에 근거하고 있다. 아직도 비교적 약속을 잘 지키며, 시간도
잘 지킨자다. 그러나 현재는 약화되고 있다.
다.복수하기(Hakmarrje):
가족간에나 개인간에 한 번 원수를 지면 자손 대대로 원수를 갚는다. 현재도 토지 사유화 문제로 이 악습은 계속되고
있다.
라.인사와 기원:
인사는 보통 학수로 하며,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볼에다 두세번씩 키스를 하면서 건강, 날씨, 그리고 가족 전체의
안부를 묻는다. 나갈 때는 모두 일어서며, 대문까지 가서 인사를 하며,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인사를 잘해야 교제를 잘할 수 있으며, 이 나라에서는 "무엇을 아는가" 보다는 "누구를
아는가?"가 중요하다. 인사와 아울러서 중요한 것이 매사에 기원을 하는 것이다.
[생일] U befte 100 vjec!
[장례] Ngusheljme.
[이사] Rrofsh me femjet!
[결혼] Te trashgohesh!
[새물건 구입] Bismila.
[아이들] Mashala.
[일이 잘 되었을 때] 슈추르 등.
"예"와 "아니오" :
"예"라고 할 때 고개를 좌우로 확실히 흔들고, "아니오"라고 할 때는
고개를 까딱하거나 손가락으로 입에 대고 쭈쭈 소리와 함께 흔든다. 또한 이들은 과거 독재자 밑에서 항상 "예"라고
하면서 복종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지금도 무엇을 물으면 말로는 "예"라고 하나 마음은
미스테리이다. 그러므로 전도를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합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예"라고
하나 그 진의는 알기 힘들다.
** 가치관의 혼란: 세대차, 공백상태의 진공현상, 전통가치관의 몰락, 물질주의의 팽배,
6. 생활
1. 음식:
아침은 빵, 치이즈, 쏘세지 등으로 약하게, 점심을 2-3시경에 가장 많이 잘 먹고 저녁은 간단히 혹은 그냥
지나간다. 음식이 아주 짜다. 물은 그냥 마심.
2. 복장: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하나 어른들은 정식으로 잘 입는다. 여자는 꼭 치마를 입는 것이 좋으며, 남자들도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과부는 평생 검은 색의 옷을 입어야 한다.
3. 오락:
특별한 오락이 없어서 TV를 보는 것이 큰 오락거리이며, 그러기에 위성 안테나는 상당히 많이 보급되어 있어서
유럽에서 보내는 위성 방송을 보고 있다. 이로 인해서 젊은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나쁜 문화들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어서 자신들의 현실과 큰 괴리 현상을 느끼고 있다. 서구의 영향으로 디스코 텍이나 술집,
전자 오락실 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4. 가정:
부부관계, 가족관계 원만, 자녀(도시는 평균 1-2명, 농촌은 5-6명) 아들 선호, 부모는 막내 아들과 같이
산다. 자녀에 대해서 무관심, 교육열 높아짐.
5. 학교:
[제도] 초등-8학년, 중등-4학년, 대학교-4학년제
[학기] 초등, 중등은 9월 15일에 개학, 대학은 10월 1일에 개학, 익년 5월말에 마치고 시험을 봄.
부패입학, 교과서 부족.
6. 의료 및 위생:
병원제도: 암불란츠-디스펜쳐리-병원/의약분업/ 병원의 부패
위생 : 물에 칼슘이 많으므로 정수기 사용 필수, 식수는 사서 사용.
국경일 및 휴일:
1.1(신정) 1. 11(민주국가 선언일) 3.7(스승의 날) 3.8(어머니 날) 5.1(노동절) 6.1(어린이
날)
7. 기독교 선교
알바니아에 대한 선교는 1991년에 문호가 개방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개방 초기에 사역한 선교사 들이
정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단체가 AEP(Albania Encouragement Project)이며, 현재
AEP산하에 70여개의 선교단체 500여명의 선교사가 서로 협력하면서 활동하고 있으며, 구호활동과 개발사역
그리고 교회개척사역을 하고 있다.
알바니아어 성경은 이미 신구약이 모두 번역되어 있으며, 오픈 도어(Open Door) 선교회와 유럽 기독교
선교회(ECM)에 의해서 전국에 널리 보급되고 있다. 하지만 번역상의 이유로 다른 선교단체들이 새롭게 번역을
시도하고 있다.
알바니아에 한국에서 파송된선교사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2 개의 교단(통합 1가정, 합동2가정)과 4개의 선교단체(바울선교회 1가정, GMP 6가정과 독신 3 ,
OM 1가정, WEC 1가정)그리고 미국소재 한국인 선교단체(작은 불꽃선교회 1가정)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한국인 선교사들은 교회개척, 의료선교, 문화선교, 스포츠선교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상호간에 정보교환과
협력및 친교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8.선교적 전망
알바니아에 70%의 회교인들이 있으나 중동이나 아랍의 회교도들과는 전혀 다른 맹목적 회교인들이 대다수이다.
정치, 사회, 종교적 대립이 전혀 없고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으로 선교적 전망이 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질주의적 배금주의 사상과 이단들의 활동이 강화됨으로 영적전투가 치열한 곳이다.
더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알바니아를 복음화해야할 긴급한 상황이다.
후방의 기도후원과 지원이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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