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한인세계선교대회>다섯째날>주제강연 I
 
"꼬리없는 짐승들의 눈빛, 북한수용소실상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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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미연방의회 북한인권청문회 증언자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하여 청진경제전문대학, 함경북도 공산대학, 평양인민경제대를 나온 엘리트로 함경북도 중앙은행에서 근무하다 아직 젊은 나이에 물자공급소 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가 정치적 모함으로 숙청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1986년부터 1992년까지 평안남도 개천정치범교화소에서 수용소생활을 했다. 1995년 아들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후 1997년 유엔국제앰내스티 총재 초청으로 증언하였고, 1997년부터 매년 미연방의회 상하원청문회에서 북한 정치범 감옥의 인권탄압 실상을 증언하였으며 영국, 프랑스, 일본, EU국회에서 증언해오고 있다. 사선을 넘은 체험수기 「증언 -꼬리없는 짐승들의 눈빛」이 있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랄 때도 있다. 이처럼 행복한 꿈이 깨어질까 두렵다.

7년동안 무서운 악몽속에서 짐승 아닌 짐승생활을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이집사님, 왜 책 제목을 ‘꼬리없는 짐승들의 눈빛’이라고 달았는가”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감옥에서 김일성 특사로 석방될 때 짐승 같은 무리들이 나에게 간절히 부탁하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수백명의 미친 예수쟁이들이 두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땅바닥에 거꾸로 엎드려 있던 그들이 머리를 번쩍 들고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었다. 네가 이 지옥에서 살아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으니 기쁘다. 네가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우리가 인간 생지옥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요즘도 계속하여 그들이 당하고 있는 참상을 세상에 알리려고 내 나름대로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사명을 주셨다고 믿는다.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만이 그들의 고통을 세상에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모르던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어머님의 평생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생전에 종교의 자유가 구속된 북한에서 지하에서 몰래 기도를 하시며 살아오시던 분이다. 어머님은 인간은 하나님만을 믿어야 된다고 하셨다. 너는 엄마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이다. 그러니 너의 앞길은 하나님께서 지켜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말씀을 한마디도 귀담아 두지 않았다. 오직 김일성 부자에게만 누구보다도 맹목적으로 충성하였다. 어머님은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후회라고 하셨다. 그러니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라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의 말씀이 맞아 떨어졌다. 내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가슴 아픈 충격이다. 나의 가정이 완전히 파산되는 비극이 닥쳐왔던 것이다. 나는 하루아침 사이에 정치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나를 살려 주셨다. 사형선고를 받은 내가 사형을 집행받는 날에 사형에서 취소되었다.

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비밀을 묻어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나의 매니저가 되어 주셔서 감옥에 갇힌 예수쟁이들의 그 고통의 현장을 미국국회를 비롯하여 영국, 불란서, EU,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국회에서 증언할 수 있게 역사해 주셨다. 언젠가는 북한에서 독재통치의 막을 내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감옥에 갇힌 수십만의 크리스천들이 해방되고 그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던 감옥은 공개될 것이다. 비밀감옥은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으로, 순교의 현장으로 길이 보존되어 많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지가 다시 평양성으로 옮겨지는 그 날이 오기를 기도하면서 그때가 오면 순교의 현장을 다 가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