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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중남미선교를 위한 쿠바의 역할
목 5:00 Memorial Student Center 210 [한]
 
전재덕 도미니카공화국에서1993년부터 사역해 오고 있는 전재덕 선교사는 감리교신학대학을 나와 기감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쿠바 (Republic of Cuba/ Republica de Cuba)

쿠바공화국 일반 개관

◈ 국명: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 Republica de Cuba)
◈ 수도: 아바나 (La Habana, 210만명)
◈ 면적: 110,860㎢(한반도의 1/2), 카리브해의 한 섬나라.
◈ 인구: 약 1,200만 명(마이애미에만 300만 망명하여 살고 있음)
◈ 주요민족: 백인(66%), 혼혈인(22%), 흑인(11%), 기타(1%)
◈ 주요언어: 스페인어
◈ 문맹률: 6% 미만
◈ 종교: 공산혁명 전 카톨릭(80.6%). (최근 비공식적인 통계-개신교 20% 추정)
◈ 기후: 아열대성 해안기후에 속한다.
연평균 기온은 25.5℃, 4-6월에는 한낮의 기온이 30℃-35℃.
동절기인 1∼2월에는 최저기온이 10℃ 이상으로 온도가 내려가기도 함.
◈ 쿠바혁명(Cuba Revolution):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쿠바는 미국과 에스파냐의 전쟁 이후 1902년 독립하였지만, 미국자본에 종속된 사탕수수 단일작물재배 경제가 형성되어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토지가 미국자본과 쿠바인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국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독재정권의 부패도 심화되어 여러 차례의 민중봉기가 일어났지만 미국의 비호 하에 진압되었다.
1953년 7월 26일 의 주도하에서 몬카다병영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을 포함하는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노선을 가진 ‘7월 26일 운동’이 결성되었다. 1956년 12월 2일 그란마호로 상륙한 후 , 체 게바라 등의 17명이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출발한 게릴라운동은 1959년 1월 1일 바티스타정권을 축출하고 민주주의 을 이루게 되었다. 초기에는 토지개혁 등 민주주의 의 성격을 띠었으나, 1960년 후반 이후부터는 사회주의 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이어 미국기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집단화를 단행하였다. 4월 16일 가 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선언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였다.
◈ 정부형태: 공산당의 1인 독재
◈ 원수: 카스트로(Fidel Castro) 국가 평의회 의장(59년 2월부터)
◈ UN가입: 1945, 10, 24
◈ 비동맹가입:1973, 09, 05
◈ 화폐단위: 쿠바 PESO(뻬소) 환율: US$1=26 뻬소
◈ 무역: (2001년 기준)
- 수출: 49억불(원당, 니켈, 담배, 커피, 과실)
- 수입: 56억불(원자재, 전자제품, 전기용품, 쌀)
- 아바나와 마딴사에 10개 유전개발: 국내수요의 6% 정도 원유생산.
◈ GDP: 255억불(2001년), 1인당 GDP: 2,000불


쿠바를 그리스도께로! (CUBA PARA CRISTO!)

■ 종교상황에 대하여

우리들에게는 호기심의 나라, 쿠바의 종교상황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면 한다.
1959년 공산혁명 당시 13개의 신학교가 있었다. 활발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과 함께 그 절반이 문을 닫았고 남은 절반의 신학교도 거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70% 이상의 목사들이 쿠바를 떠났고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은 추방을 당했다. 기존의 교회들은 그 존재는 인정되었지만 한 명 혹은 두 세 명의 교인만이 교회에 출석했다. 공산당원은 교인이 될 수 없었기에 기독교인이라고 함은 곧 사회생활에서의 매장을 의미했다.
근 30여 년 동안 교회는 전혀 부흥되지 못했다. 목회자들은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목회했고 끼니가 간데없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소수의 쿠바 기독교인들은 마치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신실한 신앙을 지켜왔다. 쿠바의 기독교가 다시 살아난 것은 불과 최근의 십여 년 전부터였다.
정부는 종교정책에 관한 새 법을 만들었다. 1991년 공산당전당대회에서 결정되어 적용된 것으로 종교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공산당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즉 공산당원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실제적인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 수는 없지만 가정에서 모임(가정교회/CELL 교회)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때부터 쿠바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되기 시작했다.
“쿠바를 그리스도께로!”(Cuba para Cristo)라는 표어 아래 모든 개신교회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있고 날마다 수 백 명의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고, 가정교회와 지역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교단과 교회마다 매 년 갑절 이상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상으로는(천주교에 의해서 조작되었다고 함) 개신교인이 국민의 2% 정도에 못 미친다고 하나, 실제로는 인구 1,200만의 약 18%를 넘어섰다고 한다. 쿠바는 일반 관광 비자를 가지고 누구든지 여행할 수 있다. 참고로, 쿠바 입출국시 여권에는 스탬프를 찍지 않고 관광카드에만 표시하고 회수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는데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관광 비자를 가지고 들어가서 설교나 전도 등 종교행위를 하다가 발각되면 추방되어 다시는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아직은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임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북한에 비한다면, 쿠바 기독인들에 의한 쿠바의 복음화의 문은 완전하게 열려있어 거의 장애가 없다고 본다. 미국인 선교사가 입국하면 출국할 때까지 비밀경찰이 미행한다. 그러나 한국인 선교사가 들어가면 일반 관광객으로 알고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 꾸바노 꼬레아노(쿠바의 한국인)

한국인으로서 쿠바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괜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꾸바노 꼬레아노(Cubano Coreano), '쿠바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면 그것이 확실해 진다. 특별히 기독교인이라면, 그리고 감리교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미주를 향한 최초의 한국이민은, 1903년 하와이섬에 도착한 102명으로 그 중에 50명이 인천 내리감리교회를 중심한 한국감리교인들이었다. 그 이후 1905년에 멕시코로 수천 명의 더 큰 무리의 한인 이민이 이루어졌는데 기독교인들의 분포도가 높았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노예생활 같은 멕시코 이민생활에서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온 약 288명의 한인들이 1921년에 쿠바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인들을 기다리는 것은 더 험난한 삶이었다. 그 때 한국인들을 소위 ‘애니껭'(enequen/ 배에서 사용하는 밧줄의 원료를 만들어내는 선인장이름에서 온 별명)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집단농장에서 살면서 선인장 밭에서 중노동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야만 했었다.
생존해 있는 최고령이신 장천뢰 할머니(Rosa Chang, 1920,3,13 생, 아바나 거주)에 따르면 그런 생활에서도 당신의 아버지이신 장영기(Angel Chang, 그의 아버지인 장천봉씨는 한국에서 멕시코로, 멕시코에서 쿠바로 온 이민 1세대로 감리교인이었다)씨가 평신도목회자로 한국말로 예배를 인도했고, 거의 모든 한국 이민자들이 교회에 모여 신앙으로 고국을 떠난 설움을 달랬다고 한다.
한인회가 조직되었고 매년 3월 1일이 되면 3?1절 기념식을 가졌고 애국가를 제창하고(옛 곡조의 애국가를 지금도 잘 불렀다) 장구도 치며 흥을 돋우었고, 마지막에는 ‘우리나라 만세’와 ‘만세 삼창’으로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이 신앙의 줄은 계속 이어져서 현재 진실한 기독교인 장천뢰 할머니의 큰 아들인 이현준(David Lee, 62세)씨는 쿠바의 작은 개신교 교단의 교단장으로 목회에 전념하는 목사님이시고 그의 큰 아들도 역시 목회자로 사역을 하고 있다. 이 가정 외에도 많은 한인 후예들이 쿠바의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꾸준히 신앙을 잘 지켜오고 있다. 아직은 눈에 띄지 않지만 머지않아 이 신앙에 기초한 쿠바의 한인 후예 기독교들이 한인 뿐 아니라 쿠바인들의 복음화에 큰 공헌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 쿠바선교사역의 비전

쿠바는 이 마지막 시대에 히스패닉(스페인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선교하기 위하여 준비된 나라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시를 보게 되면 공산혁명 전까지 만해도 ‘중남미의 진주’라는 별명이 손색이 없음을 알게 된다.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혁명 이후 한번도 페인트칠이나 보수공사를 하지 못해서 보기 흉하지만 풍기는 멋과 가치는 대단하다. 그 당시에 미국과 견줄 수 있었던 중남미의 유일한 나라였다. 저력이 있는 나라였다.
오래 전부터 미국의 경제 봉쇄로 지금은 너무 가난하게 산다. 온 국민이 생필품과 먹을 음식의 절대 부족으로 허덕인다. 화장실에는 휴지나 치약이 없다. 한달 급료가 미화 7불에서 15불 정도이다. 생닭 한 마리가 5불 정도한다. 한 달에 쌀 2.5kg과 강낭콩, 감자 한 알, 약간의 식용유, 계란 몇 알, 그리고 매일 밀가루 빵 한 개가 지급된다. 그것도 공짜가 아니라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여 먹는다. 그래서 쿠바사람들은 대개 하루 한 끼로 연명한다. 굴러다니는 자동차들은 모두 40년대, 50년대 차들이다. 20년대 고물차도 잘 굴러다닌다. 그렇지만 기가 죽어있지 않다. 그리고 교통질서 또한 잘 지킨다.
이런 와중에 현재의 사회주의 체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놀라운 일들이 있다.
첫째는 물질적인 절대 결핍은 영적인 풍요로움을 구하고 또 그것을 얻게 만들었다. 경제적인 궁핍과는 반비례로 쿠바인들은 영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지난 2003년 3월 5일 개교한 ‘쿠바선교사관학교’를 시작한 한 독립교회(쿠바복음연맹교회/LIGA EVANGELICA DE CUBA, 담임목사/알레한드로 니에또)의 주일예배나 화요일 저녁모임을 참석해보면,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저들의 간절하고 뜨거운 찬양과 기도 속에서 누구도 저들이 굶주림 가운데 고통 받고 있음을 예측할 수 없다. 셀 모임이 약 2,000개 된다. 이 셀 교회를 통해서 날마다 수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온다. 해마다 ‘두 배의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고 넉넉히 목표를 달성한다. 더구나 정말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인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쿠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국내선교 뿐 아니라 세계선교를 향한 뜨거운 열망은 놀라울 일이다.
그 다음이 1960년대에 시작된 공산당식 문맹퇴치운동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안보내면 그 부모가 체포된다. 교육기회와 의료의 무료혜택은 국민들의 지적 수준 뿐 아니라 질적 수준을 높였고, 지금은 이런 장점이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에서 말씀과 교리 등을 철저히 배우고 익히고 가르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습관적으로 모든 사람이 글을 쓰고 읽는 취미가 있다. 그리고 모든 예배가 수화로 통역된다. 이 교회에만 수화통역 봉사자가 수 십 명이다. 새신자의 성경공부는 다섯 달 이상 계속되나 중도 탈락자가 거의 없다. 이 교회의 전임사역자들 가운데 30여 명의 의사 출신이 있다. 쿠바에서는 훈련된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기가 쉽다. 한 예로, 선교사관학교 첫 학생들 15명은 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거의 300여명 가운데서 뽑힌 사람들이다. 그래서 스스로 ‘챔피온 ’ (Campeones)이라고 부른다.

선교의 총사령관되시는 우리 주님의 쿠바를 향한 부르심에 응답할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아멘


■ 쿠바선교사관학교

쿠바 선교사관학교(DIOS AMA AL MUNDO: DAAM) 운영안
(INSTITUTO DE FORMACION MISIONERA)

1. 목적
영혼의 추수 때에 꼭 필요한 영적 지도자들을 집중 훈련시켜 쿠바 국내에 교회를 개척하고 더 나아가 중남미 서반어권의 다른 나라들에 파송하여 선교지를 확보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전도하기 위한 선교사양성신학교이다.
2. 목표
1) 제자훈련을 한다. 셀구조를 통한 교회 개척설립을 위한 제자훈련.
2) 쿠바 국내선교: 수도 아바나를 비롯 14개 주(주마다 14개 군)에 교회 개척 실습.
3) 중남미 선교: 동일언어권인 중남미의 다른 나라에 파송하여 교회개척 전도.
4) 쿠바 및 다른 나라에 선교사관학교 분교 설립과 운영.
3. 학교설립
이 학교는 전재덕선교사(기감 도미니카공화국 선교사, 국제 사랑의 봉사단(황성주박사) 중남미본부장)에 의하여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있는 LIGA EVANGELICA DE CUBA(쿠바복음연맹교회) (담임목사: ALEJANDRO NIETO)에 설립되며 공동운영 된다.
*주소: AVE.45 #212 ENTRE 82 Y 84, MARIANAO, CIUDAD HABANA CP:11400 CUBA
*전화: 011-537-260-2968 FAX. 260-3198
(2004년 6월에 4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집을 Habana, LA LISA라는 동네에 구입하여 2004년 2기생의 수업이 시작됨)
4. 년도별 운영방법
1) 1차 년도: 1월부터 12월까지(8월과 12월 방학) 집중합숙훈련 방법으로 한다.
(타지역에 거주할 경우 1년 미만의 기간만 거주가 허락됨)
2) 2차 년도: 쿠바의 각 지역에 파송하여 교회를 개척 설립하고 복음을 전한다.
3) 3차 년도: 중남미 다른 나라에 파송되어 선교지를 확보하고 교회를 개척 선교한다.
5. 훈련 프로그램
이 학교는 선교사양성을 위한 다양한 이론과 실제를 겸한 훈련을 통하여 쿠바 국내 선교 및 해외선교(중남미 서반어권)를 준비한다.
년간 수업일 수: 214일, 주 37시간 이론교육과 11시간 실습 훈련.
6. 후보생 선발 기준
국내외 선교를 위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소명을 가진 자로서 그들의 목회자들에 의해 추천된 자들로 한다.
7. 지출 예산안
1) 사관학교 운영예산
- 모든 학생의 거주합숙훈련(1일 3식)을 원칙으로 한다.
- 시설 구입비를 제외하고 모든 지출 포함하여 학생 1인당 월 30불정도 지출.
- 사관학교 운영경비는 산띠아고한인교회(서준석목사 담임)와 산또 도밍고 지명교회
(전재덕목사 담임)에서 지원한다.
2) 가정교회 설립과 개척교회 운영예산
- 선교사관학교 졸업 후 흩어져 가정교회와 개척교회의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는
목회자 한 가정을 포함하여 월 약 100불이 필요하다.
- 개척교회 설립과 사역비는 한국과 미국의 여러 교회에서 함께 짐을 나누어지기를
바란다.
3) 선교사 파송 및 후원 운영예산
- 1년~3년의 지역개척교회를 목회한 후 중남미와 전세계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예산은
나라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쿠바 내의 개척교회를 돕는 손길들이 계속적으로 선교사
지원에 이어지기를 바란다.
- 첫 해외선교사 파송은 2003년 5월에 LEC교회의 JOSE 와 MARIA목사를 산띠아고한인
교회에 초청하여 도미니카원주민교회 사역을 돕고 있고, 선교사관학교 졸업생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은 2005년 말 즈음에 실현되리라 본다.

■ 쿠바선교를 위한 기도제목:

1. 쿠바의 현 체제 아래서 지혜롭게 선교사관학교가 운영되도록.
2. 사역자들의 안전과 학교 운영의 영적, 재정적인 풍성함을 위하여.
3. 1차 년도의 수업과 실습을 위하여.
- 1기생 12명의 졸업생들(2004년 3월)을 이어 2004년 9월에 시작할 2기생
40명의 학생들의 1년간의 수업과 실습을 통하여 잘 훈련받도록.
4. 2차 년도의 쿠바 내 개척교회를 위하여.
- 1기 졸업생 12명이 개척한 10개 교회의 부흥과 한국과 미국 내의 후원교회와
후원자들의 연결을 위하여.
5. 3차 년도의 해외선교사 파송을 위하여.
- 중남미 서반권만 아니라 지구촌 모든 민족을 향하여 선교사들이 파송될 수 있도록.
6. 선교사관학교 확장을 위한 건물 구입과 시설 준비(교실, 기숙사, 식당 등)를 위하여.

<쿠바에서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간단하게 적어본 글들>

CUBA PARA CRISTO 1. (쿠바를 그리스도께로!)

쿠바가 영적으로 큰 기지개를 피며 동면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쿠바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땀 흘릴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1. 쿠바의 현재 상황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쿠바는 1990년대 소련 공산주의가 무너지기까지 나름대로 성공적인 공산주의를 실현해왔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소련에만 의존하던 경제가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세계 최대 빈민국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위기가 쿠바정부로 하여금 쿠바교회를 향하여 문을 열도록 만들었습니다.
1959년 혁명당시의 헌법에는 종교와 집회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었으나 부칙으로 종교인은 공산당원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첨가되 실제로 쿠바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어 그 후 30여 년 동안 DIOS(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제위기로 국민봉기가 일어날 만한 상황에서 종교는 아편이라는 공산주의 이론에 근거하여 극약처방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1991년 공산당대회에서 ‘종교인도 공산당원이 될 수 있다’라고 부칙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쿠바 국내에서의 자국민의 종교 활동은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체의 매매행위가 금지되어 있고 모든 것을 당국에 보고해야하는 경찰국가이기에 늘어나는 교인을 수용할 공간을 만드는데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다든가 신축이나 개축은 전혀 허락을 받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90년대 초의 유류파동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개신교인들이 교통수단의 불편과 건물의 협소함 때문에 기존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1994년 당국으로부터 가정에서 모일 수 있도록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 쿠바교회가 자연스럽게 셀 중심 교회로 그 부흥의 속도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지방도시에서 가정교회들이 편법(주로 집과 집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일반 가정집을 구입하여 교회로 개조하여 사용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들어 여기에 대한 단속이 아주 강화되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께서 아주 지혜롭게 그리고 아주 효과적으로 주님의 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쿠바를 여행할 때마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사역내용
쿠바선교의 특징 중 하나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이어서 국민전체의 학력이 높고 대개가 전문직업인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경우 짧은 기간의 신앙교육과 훈련으로 영적지도자로 준비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징에 초점을 두어 2003년 3월에 ‘쿠바선교사관학교’라는 해외선교사를 훈련하는 1년 과정의 신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첫 해는 사관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쿠바의 14개 주에 각각 흩어져 셀을 만들고 교회를 개척하여 1-2년의 목회실습을 하고 그 후에는 중남미의 스페인어권 나라에 파송되어 선교사로 사역하는 것이 사관학교의 목표입니다.
현재 14명의 학생이 훈련받고 있으며 2004년 2월에 졸업하게 됩니다. 2003년 11월말까지 실습과정을 통해 420명을 전도하였고 148명이 제자훈련을 받고 있으며 11개의 셀 모임과 두 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졸업 때까지는 8-10개 교회가 개척되리라 봅니다.
2004년 제2기 신입생을 현재 모집하고 있는데 200여명 이상의 지원자가 있으나 공간을 확보할 수가 없어서 20명 정도 선택하여 계속 운영할 계획입니다.

3. 기도제목
1) 전재덕, 이재순 선교사의 ‘선교사비자’(종교비자)가 속히 나오도록.
쿠바에 관광비자로 입국하면 일체의 종교 활동과 선교사역을 할 수 없으며 주택임대나 자동차구입이 불가능하여 장기 체류할 수 없습니다. 선교사비자를 쿠바현지 교회의 도움으로 신청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2) 선교사관학교 학생들이 성령충만하여 신실한 주님의 일군으로 준비되도록.
3) 1기생들을 통한 교회개척과 전도를 위하여.
2004년 2월말에 졸업하는 학생들을 통하여 10개교회 이상을 개척할 계획인데 목회자 생활비와 임시 교회임대 혹은 사용료가 월 약 100불이 필요합니다. 지원교회가 결정되면 지원받는 목회자와 교회 등을 자세히 알려드리고 직접 교제하고 후원되도록 안내하겠습니다.
4) 2기생 모집을 위하여.
5) 신학교 자체건물 마련을 위하여.
6) 쿠바 한인교회 개척과 한글학교 개교를 위하여.
- 2004년 2월에 쿠바를 방문하여 아바나(HABANA) 거주 한인 후손들(한국어 전혀 모르는 상태)을 초대하여 도미니카한인교회에서 준비한 떡만두국을 대접하려고 합니다. 어떤 한인 후손은 처음으로 먹어보는 설맞이 떡만두국일 것입니다. 저희는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이 모임을 통해 쿠바 한글학교와 쿠바 한인교회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인후손들은 아주 가난하게 살고 있어서 교회나 한글학교에 오는 교통비를 지원해주어야 할 형편입니다.
7) 쿠바의 정치, 경제 상황이 복음 확장에 도움이 되도록.

쿠바가 아직 공산주의 국가이어서 예상하지 못한 위험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뜨겁게 기도해주셔서 쿠바를 통하여 중남미와 히스패닉을 향한 선교가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2003년 12월에 아바나에서 전 재 덕.


CUBA PARA CRISTO 2. (쿠바를 그리스도께로!)

2004년 2월 19일부터 쿠바를 또 다녀왔습니다.
나는 쿠바사역을 하면서 해야 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사역도 많습니다만 늘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쿠바가 완전히 열린다는 가정아래 열려진 쿠바에서 교회 건물을 짓고 신학교를 세우는 일은 필요한 재정이 준비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가서 아무리 좋은 정책과 많은 재정 지원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하나님의 일군을 준비하는 일에 필요한 시간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서 ‘그 때’를 걱정하느라 고생이 참 많음을 봅니다.
지금 닫혀 진 쿠바에서 지도자들을 준비한다는 일은 아주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쿠바선교사관학교’(DAAM)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남미의 서반어권 선교를 위해 헌신된 쿠바 기독교인들을 준비시켜 해외선교사로 파송한다는 비전을 갖고 시작하였습니다. 쿠바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영적인 상황에서 그것은 이상(idea)이어야만 했습니다. 아니 꿈도 꾸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보다 더 이 일에 정신이 빠져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이 일을 그 분의 방법으로, 오묘한 방법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난 일년 동안 DAAM을 통하여 역사하신 그 분은 믿음이 약한 우리들에게 눈에 잘 보이는 풍성한 열매들로 선물해 주셨습니다. 심는 일도 가꾸는 일도 보잘것없는 것인데 열매 맺게 하시는 그 분의 역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DAAM은 2003년 3월에 14명으로 시작했는데 2004년 3월 말에 두 부부를 포함해서 12명이 졸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2월 현재 세 곳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에 예비교회-셀(가정교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전도여행을 하여 만들어진 셀모임이 자라나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6월 말에 1기생 졸업식을 하기까지 우리는 열개의 교회를 목표로 전투하고 있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히 감당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 중에 40여명이 합숙훈련을 할 수 있는 넓은 집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체의 매매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쿠바 아바나에서 이런 선교센타가 준비됨은 주님의 기적입니다. 2기생(9월에 시작할 예정)부터는 학생수가 40여명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출국 전날 밤에 신학생들과 저녁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비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올해는 쿠바의 14개 주를, 그리고 내년부터는 중미, 남미,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등을 선교지로 기도하고 있는 ‘미래 쿠바선교사들’의 주님을 향한 감동적인 고백이었습니다.

2004년 2월 도미니카에서 선교사 전재덕.


쿠바를 그리스도께로! 3. (CUBA PARA CRISTO)

쿠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배려와 베풂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쿠바는 5억의 중남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우리 주님의 작품이다.
그 쿠바가 오랜 영적인 동면에서 깨어났다.
당신이, 세계를 품은 하나님의 사람이, 쿠바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며 땀 흘릴 동역자로 헌신되어야만 한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쿠바는 나름대로 성공적인 공산주의를 실현해왔다고 자부해왔으나 미국의 경제조치로 소련에만 의존하던 경제가 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무너지면서 세계 최대 빈민국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경제 위기가 쿠바정부로 하여금 쿠바교회를 향하여 문을 열도록 만들었다. 1991년 쿠바공산당대회에서 ‘종교인도 공산당원이 될 수 있다’는 법을 선포하면서부터 국내에서의 자국민의 종교 활동은 완전한 자유가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일체의 매매행위가 금지되어 있고 모든 것을 당국에 보고해야하는 경찰국가이기에 늘어나는 교인을 수용할 건물을 만드는데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건물의 신축이나 개축은 전혀 허락을 받을 수 없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개신교인들이 교통수단의 불편과 건물의 협소함 때문에 기존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1994년 당국으로부터 가정에서 모일 수 있도록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 쿠바교회가 자연스럽게 셀 중심 교회로 그 부흥의 속도를 더하게 되었다.
쿠바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이어서 국민전체의 학력이 높고 대개가 전문직업인들이다. 쿠바교회의 장점은 이들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경우 짧은 기간의 신앙교육과 훈련으로 영적지도자로 준비될 수 있다.
이런 특징에 초점을 두어 2003년 3월에 ‘쿠바선교사관학교’라는 해외선교사를 훈련하는 1년 과정의 신학교를 시작하였다. 첫 해는 사관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쿠바의 14개 주에 각각 흩어져 셀을 만들고 교회를 개척하여 1-2년의 목회실습을 하고 그 후에는 중남미의 스페인어권 35개국 5억의 영혼을 거두는 일에 쓰임 받게 되는 것이 쿠바선교사관학교의 목표이다.
지난 2004년 3월 12명이 졸업하여 지금까지 10개의 개척교회를 세워 빠르게 부흥하고 있다. 그중 상띠 스삐리뚜스에 개척한 교회(담임: JUAN 후앙)는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를 건축하게 된다.(건축비 12,000불/아산지방 쌍룡교회 지원)
9월에 시작할 2기생은 약 40명 정도로 이들이 함께 숙식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아바나시 교외에 위치한 큰 집을 구입하게 되었다. (15,000불/중랑지방 신방주교회 지원)
우리 지명교회는 중남미 5억 선교를 마무리하는 교회로 주님께서 주신 구체적인 선교전략으로 그 사명을 다하기를 소원한다. 특별히 이번에 지명교회에서 박병수, 장미경집사를 쿠바에 평신도선교사로 파송하여 그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음을 기뻐한다. 2004년 6월 13일 지명교회 창립2주년 기념으로 최초로 평신도선교사가 쿠바에 보내진다. 뒤를 이어 모든 성도들이 교회의 이름대로(지명교회란 주님의 ‘지상명령’의 줄인 말이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온 세계에 나가 복음을 증거하기를 소원한다.

2004년 5월 23일 산또 도밍고 지명교회에서 전재덕.


쿠바를 그리스도께로! 4. (CUBA PARA CRISTO)

같은 셀은 셀인데...
쿠바정부는 지금 두려움 가운데 있다. 45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어서 이다. 59년 혁명은 무혈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CELULA REVOLUCIONARIA(혁명 셀) 덕분이었다. 쿠바공산반군은 FIDEL CASTRO 등 뛰어난 지도자들에 의해서 움직였다. 그들은 각 동네마다 공산주의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셀(핵심 세포) 가정을 구축했다. 그리고 각 셀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다. 경찰서 습격, 요인 암살, 방화, 무기 탈취 등이 거의 소리 없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정부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산반군의 공격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셀 중심의 사역(?)이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 같은데 그 움직임은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 냈다. 적어도 쿠바공산지도자들은 그 위력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쿠바에는 전혀 다른 내용과 비전을 가진 셀이 일어나고 있다. 그 위력은 혁명 셀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바로 가정교회(CELULA)이다. 1994년 원유파동으로 교인들은 멀리 떨어진 교회를 다닐 방법이 없었다. 길에는 자동차만이 아니라 도대체 타고 갈 것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 한 대안으로 쿠바정부는, 교회가 5km이상 떨어져 있고 10명이상의 교인이 되면 가정에서 모일 수 있다고 선포했다. 그것은 바로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된 교회의 가장 효과적인 전도와 선교의 방법인 셀교회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아직도 열악한 대중교통수단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트레일러 머리에 콘테이너를 개조한 낙타허리 모양의 기다란 버스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일명 낙타버스다. 많이 타면 400명이나 들어간다고 한다. 거리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새 차가 아니면 보통 1920년대부터 1950년대의 낡은 것들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정비를 잘하여 타고 다닌다. 아니 잘 굴러다닌다. 이면에서 쿠바사람들은 세계제일이다. 지방도시에는 말마차가 주된 교통수단인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직도 쿠바정부는 교회에 허락한 가정교회 모임을 해체시킬 방법이 없다.
쿠바정부는 미국이 쿠바교회의 셀을 이용하여 정부전복을 꾸민다고 의심하고 있다. 교회의 수많은 셀들이 이 일에 행여나 동참한다면 45년 전의 혁명이 거꾸로 일어나 뒤집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쿠바에서는 30명 이상이 모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교회 지도자들 중에 이런 이유로 체포되어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도 하다.
같은 셀인데 가정교회 셀은 죽을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마음의 상처를 싸매주는 하나님의 지체임을 쿠바정부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며 꼭 필요한 생명의 혁명이 쿠바를 뒤덮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