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라는 말은 프랑스가 자신의 식민지 연방을 가르쳐 사용하였던 말이다. 그후 이 단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서 인도양과 중국남해의 가운데 있는 반도를 가르치게 되었다. 지금
이곳은 여러 개의 국가로 구분되어 있는데, 언급하면 베트남, 라오스, (서부)말레이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이다.
한국을 기준하여 인도차이나는 서남쪽에 위치하며, 거리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여 있다. 이 지역에
있는 몇 나라는 한국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태국과 베트남이다. 태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 가운데
한 나라이다. 아시아국가에서 유일하게 우리에게 도움을 준 나라이다. 그리고 베트남은 이데올로기로 인해 남과
북이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은 미국과 함께 공산주의를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약 50년 전부터 이곳에 마음을 두고 일을 하였다. 한국전쟁이 휴전이 되고 만 3년이 지난 1956년에
한국교회는 최찬영목사와 김순일목사를 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1970년을 전후로 하여 한국교회는 베트남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하였다. 예를 들면 현지인 ‘바오’청년(지금 목사)을 한국에서 공부시켜 베트남으로 보낸
일, 현지교회의 요청으로 박성준목사를 파송한 일, 또한 한인들을 위하여 김상우목사를 파송하여 사이공한인교회를
설립한 일 등이다.
이 지역의 많은 나라들이 사회주의 국가로 모습을 탈바꿈하면서 한때 선교의 문은 닫혀 있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나라들은 서서히 문을 열게 되었다. 열려진 좁은 문을 이용하여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을 이 지역에
보내고, 선교사들은 선교현장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21세기에 접어들었다. 이 지역에는 지금 보다 더 많은 선교사들이 가서 일해야 할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일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인도차이나
지역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구체적인 전략과 방향을 세워 일하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I. 선교지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요성
가. 지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는 지리적인 반도의 특성, 열대성 기후, 풍부한 자원과 농산물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장점으로 해서
옛날부터 이곳은 동양과 서양의 상인들이 만나 무역을 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등은 이곳에 진출하여
나라들을 점령하여 식민지를 삼고, 현지에서 생산되는 많은 자원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옛날 사람들도 지금처럼 배를 타고 중국남해인 태평양을 거쳐 말레이시아를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섬들로 인한 위험, 때로 일어나는 태풍을 조심해야 하였고, 그리고 ‘말라카’지역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해적단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해서 중국을 비롯한 일부 상인들은 태국의 남부지역인
‘쑤랏타니’에 배를 대었다, 중동과 인도 그리고 서양의 상인들은 인도양의 ‘푸켓’에 배를 대었다. 그리고 ‘쑤랏타니’와
‘푸켓’까지는 육로를 이용하여 물건을 운반 하였던 것이다. 앞으로 태국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운하를 파는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도차이나에서 태국은 교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전 세계의 주요항공사들이 이곳을 경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일본, 한국등 아시아의 항공사를 제외하고도, 미국, 이스라엘, 유럽, 중동, 러시아
항공사등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고려항공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태국이
관광지로 알맞은 기후와 환경을 가진 것과 아울러 동서를 오가고, 남북으로 여행하는데 있어서 쉽게 들렸다 갈
수 있다는 교통의 편리함을 들 수 있겠다.
나. 많은 미전도 종족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10/40창’이라는 말을 누구나 알고 있다. 북위 10-40도 안에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으므로, 이들을 향한 미전도종족의 선교를 힘쓰자는 것이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지구촌의
여러 곳에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곳이 인도차이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자료를 보면 미얀마의 경우 50개의 종족, 베트남에 55개의 종족, 라오스에 49개의 종족, 캄보디아에 20개의
종족이 있다. 태국도 타이족, 중국계 화교, 말레이족 그리고 소수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도
말레이족, 중국계 화교, 인도계로 뭉쳐진 다 종족국가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지역의 모든 국가들은 다 종족으로
구성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인도차이나의 많은 종족은 중국으로부터 내려 왔다고 한다. 그러나 월남전쟁으로 인하여 월남과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에 살던 사람들의 일부가 이동을 하였다. 또한 미얀마에서 오래 전부터 카렌족과 미얀마 정부와의
충돌로 인해 카렌족의 난민이 태국에 넘어와 살고 있다.
다. 최근에 개방의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이 지역에서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곳은 태국뿐이었다. 주변에 있는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는 태국과 같은 (소승)불교 권이지만, 우선 쉽게 방문할 수가 없었다. 이 나라들 가운데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대표적으로 전쟁과 살상을 통해 엄청난 자원과 인명의 피해를 많이 받은 곳이다.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는 쿠데타를
통해 사회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국민을 더욱 어렵게 생활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이 나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들이다. 라오스의 경우 국민 1인당 총생산액/GDP가 미화 290불(00년)이다,
미얀마의 경우 국민 1인당 GDP가 미화 265불(00년)이다. 캄보디아가 300불(01년), 베트남이 419불(99년
통계) 그래서 라오스정부는 국정목표의 첫 번째를 세계의 최대 빈민국에서 탈피하는 것으로 삼았다.
이들은 80년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시장경제체재로 돌아섰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중국을 모델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고자 ‘아세안’(ASEAN)에
가입을 하였다.
문호를 개방하면서 외국인 관광객과 사업가들이 자본을 가지고 이들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한국인들도 90년도에
접어들면서 ‘세계화’에 맞추어 회사와 공장들이 보다 좋은 조건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인도차이나에 있는 몇 나라와는 단절되었던 외교가 다시 정상화되어 수교를 하면서 한국인들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해서 캄보디아의 경우 교민이 약 600명, 라오스에는 약 150명, 말레이시아에는 약 2,300명,
미얀마의 경우 약 700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II. 변화하는 인도차이나 반도
가. 화교들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각 나라들의 경제개방정책과 아울러 그 나라의 상권을 쥐고 있는 화교들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중국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얀마의 경우 1985년에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를 대외무역에
개방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인접한 중국과 미얀마의 교역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이 미얀마에 들어와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중국인들은 이곳에서 상업, 부동산, 호텔등에 참여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조심스럽게
보아야 할 것은 중국정부가 미얀마를 통하여 인도양에 진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경우 전쟁기간동안 화교들이 많은 고초를 겪었었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를 통한 개방정책은 다시
중국계 화교들의 지위가 부상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프놈펜이나 주요도시의 거리에서 종래에 보기 힘들었던
중국말 간판이 많아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캄보디아인들은 중국계 화교들의 상권에 염려하고 있지만 벌써 ‘캄보디아상공회의소’는
화교들의 손에 들어가 버렸다.
라오스의 경우 경제적 개방은 1988년부터이다. 그후 태국의 중국계 화교들이 라오스에 진출하고, 또한 외국인들이
라오스내의 중국계 사람들과 사업에 손을 잡으면서 화교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되었다. 최근 개방과 아울러 많은
중국인들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말레이시아정부는 말레이인의 우대정책을 쓰고 있다. 취업과 대학의 입학에도
말레이인에게 우선권이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1969년 말레이인들이 중국인의 감정에 대한 폭발이 있은 후부터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계 화교들이 이곳에 들어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98년 ‘마하티르’총리와 ‘안와르 아브라힘’부총리간의 정치적인 충돌로 인하여 모슬렘중심의 정치계가 분열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말레이인들의 마음이 나뉘고 또한 정치에서의 표를 고려하여 힘있고 영향력
있는 중국계 화교들을 겨냥한 정치의 선심을 쓰게 되었다. 30%를 차지하는 중국계 화교들의 힘과 영향이 다시
사회에 스며들게 된 기회가 된 것이다.
나. 협의와 협력을 통한 개발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의 나라들은 모두 ‘아시안’(ASEAN)이라는 조직에 가입을 하였다. 각 나라의 정상들은이 조직체를
통해 모임을 갖고, 함께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1) 도로
태국의 북부 ‘치앙라이’에서 라오스와 미얀마를 경유하여 중국의 남부 ‘운남’성의 ‘곤명’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로 알려진 정글지역인데, 이 길이 개통되면서 관계된
각 나라와 주변 국가에 교역의 확대를 가져오고 있다. .
라오스는 일본의 자금을 힘입어 야심에 찬 도로 건설을 하고 있다. 이 나라는 사면이 육지로 둘러 쌓여 있는데,
도로건설을 통해 각 나라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계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해서 캄보디아와 인접한 남부에서부터 북부
중국으로 연결하는 13번 도로, 그리고 베트남의 중부와 태국의 동북부를 잇는 9번 도로를 공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남북을 연결하는 13번 도로는 메콩강의 주요도시를 연결하게 됨으로 완공될 경우 큰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동서를 있는 9번 도로는 라오스뿐만 아니라 인근 나라에게도 큰 유익이 될 것이다.
태국과 베트남은 이미 양국간의 수산협정을 체결하였는데, 태국 남부 인도양에서 잡은 수산물을 라오스에서 만드는
9번 도로를 통해 베트남의 중부로 보내며, 베트남은 태평양에서 잡은 수산물을 같은 도로를 이용하여 태국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태국은 앞으로 동북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9번 도로를 통해 중국, 일본, 한국등으로
화물을 운송할 경우 거리와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 13번 도로의 경우 남부 길은 01년
2월에 개통이 되었으며, 9번 도로의 개통은 일부 사용되고 있으나 완공되기까지는 약 2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 철도
80년대 후반에 모임에서 철도를 통해 무역을 하자는 제의가 나왔다. 인도네시아의 ‘자
카르타’에서 물건을 만들어 ‘싱가포르’와 태국과 중국을 경유하여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바 그다드’까지 철도를
통해 보내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의견들은 정상들의 동의를 받아 일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1995년도
제5차 아세안(ASEAN)정상회담에서는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Mahathir)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3가지 루트를 제기하였는데,첫째는, 동부 노선으로 쿤밍에서 허코우(河口)를 지나 베트남을 경유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부노선으로 쿤밍에서 징홍(景洪)을 지나 라오스를 경유하는 것이고, 셋째는 서부노선으로 쿤밍에서
달리(大理)와 루시(潞西)를 지나 미얀마를 경유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첫 번째 설명한 동부노선은 총 5,600킬로미터의
길이인데 오래전부터 선호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쿤밍에서 허코우까지는 험악한 산악지대로서 지그재그로 가는 660킬로미터이지만
이미 프랑스인들이 100년전에 닦아 놓은 철도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베트남,캄보디아,태국, 말레이시아등
여러국가들을 경유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IMF로 이 철도 건설계획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 2000년도
말 싱가폴에서 가졌던 ‘아세안 + 3’(중국,한국,일본)회의에서 중국의 ‘주룽지’총리는 미화 25억불이 소요되는
이 철도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표명을 하였다. 보다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3) ‘메콩강’ 개발
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메콩강을 통한 무역확대가 논의되었다. 메콩강은 중국의 히말라야에서 시작하여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국경선을 따라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에 이르는데 그 길이는 총 4,800킬로미터이다. 이 강은 힘찬
물살과 풍부한 수량을 가지고 있어서 전력생산과 농업증산에 막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본래 이 프로젝트는 메콩강 주변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생활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해서 중국과 라오스의
경우는 댐을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라오스의 경우 경제적인 궁핍으로 발전된 전기의 많은 양을 태국에
팔고 있다. 또한 강과 인접한 지역은 수로를 만들어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멀리 내다보지 못한 댐의 계획, 또한 무분별한 강의 개발로 환경파괴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잘
잡히던 고기가 잡히지 않고, 강물의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또한 일부지역에서는 농업용수의 불편을 겪고 있는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해서 메콩강과 관계된 주변 국가들은 회의를 통한 이 같은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 태국에서 이슬람이 성장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이슬람교가 분포되어 있는 곳은 베트남의 남부 메콩델타, 캄보디아에서 메콩강과 똔레(Tonle)강을
중심한 지역, 태국의 남부, 미얀마의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쉬와 접경한 지역 그리고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말레이시아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띠게 이슬람이 성장하고 있는 곳은 태국이라 할 수 있다.
태국에서의 이 같은 이슬람의 성장은 80년대 이후 태국 남부지역, 90년대에는 방콕과 주변지역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배경에는 중동에서 지원 받은 오일달러를 통한 포교와 수도 방콕에 도시화현상이 확대되면서 변두리와
하천을 중심하여 살던 모슬렘들이 방콕에 편입되고 또한 가지고 있던 땅의 값이 폭등하면서 부를 축적한 이면이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모스크가 방콕의 동부 여러 지역에 건축되고 개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태국의 역사를 보면 18세기부터 남부에 살고 있던 모슬렘은 방콕과 주변지역으로 많이 이주를 하였다. 특별히
20세기초에 방콕의 ‘짜오프라야’강 주변에 운하를 인공적으로 만들 때, 남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원이 되었다.
지금 방콕에 있는 모슬렘의 숫자는 약 50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스크만도 약 200개가된다. 방콕과 인근
주변의 지역(도)에 있는 신도를 합친다면 그 숫자는 약 100만명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들어 방콕과
근접한 ‘차청싸오’라는 지역이 공업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곳에 많은 모슬렘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적지
않은 모슬렘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하고 있다.
또한 태국의 남부지역은 모슬렘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살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모슬렘은 대부분이 말레이
사람들이다.(2.8%) 이같은 배경으로 모슬렘은 태국의 남부지역에서 강력한 힘을 사회에 미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모슬렘들이 선출한다. 이전의 수상을 몇 차례 지냈던 ‘추안’수상도 불교인이었지만, 저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수상에
선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III. 한국선교사들과 선교사역
인도차이나에서 한국선교사가 제일먼저 일한 곳은 태국이다. 1956년도에 두 선교사가 태국땅에 파송되어 일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남한 전역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 있을 때였다. 두 선교사를 뒤이어 계속 선교사들이 투입되어
사역을 계승, 확장하고 있다. 현재 약 110유니트(싱글포함)가 도시와 지방에 흩어져 다양하게 일하고 있다.
인도차이나에서 태국을 제외한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는 아직도 선교사들의 공식적인
사역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베트남이 통일되기 이전에 선교사들이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에서
태국을 제외하고 선교사들이 사역에 착수한 때는 1980년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으로 본다. 따라서 오래된
곳은 아직 20년이 되지 않았고, 최근에 시작한 곳은 아직 10년이 되지 않는 지역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역현장은 개척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개척자로서 자신과 뒤를
이어 올 후배들을 위한 터를 닦고, 구조물을 세우는 주님의 헌신된 일꾼들이다.
이들을 통해 현재 진행되는 사역들은 다음과 같다.
가, 한인교회
나. 신학교와 훈련원 사역
다. 전도와 교회개척
라. 소수 종족사역
바. 재단사역/병원, 농업, 고아원, 재활원등
마. 출판사역
사. 어린이사역
아.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
바. 학원사역(학교설립운영)
사, 대학사역
IV. 21세기의 인도차이나의 선교전략
이 지역은 21세기에 정적인 모습보다는 동적인 사회와 경제의 모습으로 변화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가지고 일하되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인내하며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 미전도 종족을 향한 전도에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다수의 종족들은 산과 정글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간직하고 살고 있다.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종족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며, 대부분은 정령숭배를 하는 사람들이다. 앞부분에서
각 나라에 대한 종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 통계는 간추려서 이 정도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분류를
한다면 이 숫자는 더욱 많아 질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어떤 종족은 우리가 생각조차 못하였던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1980년대 초로서 본인이 선교사로 태국에 오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서울에서 선교회 본부 사무실을 방문하였는데,
태국에서 일하는 한 선교사님이 보낸 (신문)자료를 보았다. 그때까지 북부지역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한 종족의
사진이 한 일본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것이다. 옷도 거의 벌거벗은 사람처럼 보였다. 왜? 이 사람들은 그 동안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이 종족은 소수의 단위로서 농사를 짓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을 식생활로
하다가 낙엽이 질 때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면서 살아가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때로 미전도 종족이 도시정글에도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경우 여러 종족가운데 그 가운데 ‘친’족이 85%, ‘카렌’족 25%, ‘카친’족이 90% 복음화 되었다고
한다. 친족이 살고 있는 지역은 방글라데쉬와 인도와 접한 지역이다. 또한 ‘카친’족이 살고 있는 곳은 북쪽의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외진 곳이고 높은 산이 둘러 쌓인 곳이다. 수도 양곤에서 볼 때 아주 먼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사역할 것인가? 에 대하여는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미얀마에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인가? 물론 깊은 정글 속에서 한번도 주 예수의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곳에서 지배종족으로
수도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버마’족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정통불교인 소승불교를 믿으면서 도시정글에 살고 있는 중요한(?) 미전도 종족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및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 태국을 이슬람선교를 위한 전지기지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인도차이나에서 말레이시아는 대표적인 이슬람국가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태국의 남부지역과 방콕에 이슬람 많은
신도들이 있다. 또한 라오스와 인접한 북부 ‘치앙마이’와 ‘치앙라이’지역에도 이슬람 신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치앙라이’의 한 깊은 시골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모스크를 본적이 있다. 미얀마의 북서쪽
방글라데쉬와 인접한 곳에 다수의 이슬람신자들이 살고 있다. 베트남의 남부 ‘메콩델타’지역에 있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참’족이 살고 있다. 캄보디아의 동부지역인 ‘메콩강’지역에서 어업을 주로 하며 살아가는 약 20만 명의 ‘참’족이
있다.
이슬람세력은 태국을 제외한 곳에서 아직까지 그렇다 할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태국은 이슬람세력이
남부에서 그리고 수도 방콕과 주변지역에서 성장하며 그 영향력을 조금씩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생각건대
이 같은 이슬람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말레이모슬렘들의 영향력이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수도방콕에 살고 있는 많은
모슬렘들은 본래 남부지방에서 방콕과 중부지역의 하천을 만들러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말레이시아국가 아래에는 인도네시아와 같은 보다 큰 이슬람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세력을 우선 태국에서 차단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본다. 그 장소는 남부지역의 ‘쏭크라’가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태국의 남부지역에서 행정과 교육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여러 개의 대학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남부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서 올라오는 관광객들과, 태국의 ‘방콕’과
‘치앙마이’, ‘푸켓’에서 내려가는 관광객들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또한 국제 공항도 있다.
이곳에 이슬람사역을 위한 헌신된 선교사들이 와서 태국남부에 있는 이슬람신자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일꾼을 키우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말레이시아의 교회들과 협의하여 서로 사역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도록 한다면 모두에게 격려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도사역과 훈련사역을 공동으로 하는 것이다.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말레이시아 성도들은 모슬렘사회에서 살아온 경험을 살려 태국에 와서 전도하며 교회사역을 돕고,
태국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인적자원을 요청할 경우 그곳에 가서 쉽게 협력하여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은 태국의 남부지역을 복음화 하고, 이슬람 세력의 성장을 차단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다. 협력을 통한 단체와 선교사간의 사역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선교사역이 쉬운 곳은 없다. 인도차이나도 선교사역을 하는데 만만치 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몇 나라는
국가의 종교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국가들은 “ 종교는 국가를 존립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명시하고,
선교사의 공식적인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나라에서 선교사의 활동은 다양하게, 여러 가지 창의적인 방법을 통하여 접근을 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와
단체간의 협력이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협력이란 단체와 단체간, 그리고 선교사와 선교사간의 신뢰
속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을 말한다. 이 신뢰란 서로가 그 단체의 특성과 부르심과 은사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주님 앞에서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럴 때 서로가
정보의 교환과 사역의 교류가 흠 없이 나누어지고 협력의 장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협력은 단체와
선교사간의 모임과 협의를 통하여 새롭게 들어오는 선교사들을 적절한 지역에 배치할 수 있고, 또한 협력을 통한
효과적인 ‘팀’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인도차이나에서 선교사가 소수 부족인 미전도종족의 사역을 할 경우 협력의 필요가 더욱 요구된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몽’(Hmong)족의 경우 태국에만 약 20만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종족은 본래 라오스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다. 라오스의 몽족의 뿌리는 중국에 두고 있다. . 이들과 같은 혈통을 가진 종족은 베트남에도 약
70만 명이 살고 있다. 또한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이룬 중국의 남부지역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라후족, 미엔족등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일하기를 사모하는 선교사는 보다 넓은 시야와
협력을 가지고 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협력을 통해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녀 교육의 문제이다. 서양선교사들은
선교단체에서 나름대로 정책이 있고, 어떤 (독일)선교단체의 경우에는 교육담당선교사가 현장에 와서 선교사의 자녀들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영어권의 선교사일 경우에는 현지 언어와 영어라는 두 가지 언어만을 해결하면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안정된 교육을 받기를 모두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현장에 한국학교나 외국인학교가 있는 곳이 드물다. 대도시에나 외국인학교가 있고, 한국인학교는 베트남의 사이공이나,
태국의 방콕에나 있다. 또한 자녀들의 학비문제도 부담이 된다.
21세기에 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인도차이나의 도시와 지방에 흩어져서 일하게 될 것이다. 도시와 지방에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종족들을 위해서, 또한 선임선교사들과 함께 ‘팀’사역을 할 것이다. 이 일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각 선교단체가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계획과 전략이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효율적인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하여 단체간에 선교사자녀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의 운영을 위한 협력의 장이 열려야 할 것이다.
마치는 글
인도차이나는 방콕을 중심하여 비행기로 모든 지역이 약 두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다. 모든 지역이 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해서 때로 본인은 이 지역에서 일하면서 국경선을 지워버리고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같은 쌀밥 먹고, 같은 종류의 과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친척집이 이웃에 있는데 가려하니 군인이
못 가게 한다. 소수종족인 이들이 국경선을 만든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이들도 모르게 어느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명절이나 잔치 날이면 오간다. 몰래 오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도차이나이다.
다 종족이 살고 있다. 힘 있는 지배 종족을 중심으로 다른 종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가난과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인도차이나는 전략적인 선교의 요충지라 할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일꾼을 키우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인도차이나에 주님의 일꾼들이 많이 세워지면, 우리는 이 자원을 가지고 서남아시아과
북부의 중국남부지역 그리고 남부의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지역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향한 선교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한 시기에 이곳의 문을 열어 주셨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였다. 넉넉함이 있어서 한 것이 선교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이 선교를
명하셨기에 순종하여 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이다.